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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22편> 일본 젊은이들의 비밀 데이트 명소 세타가야구 ‘카미마에다’ 골목을 찾아서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11. 07:33
일본 젊은이들의 비밀 데이트 명소 세타가야구 ‘카미마에다’ 골목을 찾아서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22편. 도쿄 안에서 연인과 손을 잡고 걷기 좋은 조용한 거리를 아시나요? 오늘은 바로 젊은이들의 비밀 데이트 명소 세타가야구 '카미마에다'를 가보려고 합니다.
요란하지 않은 도쿄 속의 동네_카미마에다
도쿄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행객의 성지다. 도쿄를 여러 번 와본 사람이라면 시부야와 시모키타자와, 다이칸야마 같은 지역의 이름은 이미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세타가야구의 끝자락에 지도에도 잘 보이지 않는 낯선 이름 하나가 보였다. 카미마에다(上真榎田)라는 이름의 동네가 그곳이다. 단선 전철인 세타가야선이 지나는 조그마한 골목 마을 카미마에다는 여행객은 거의 모르는 일본 현지 젊은이들의 숨겨진 데이트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일본 현지 블로그에서 ‘연인과 데이트하면서 쉴수 있는 조용한 동네’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고 알게 된 곳이다. SNS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고 사진도 몇 장 없는데다 적혀있는 리뷰도 마치 누군가의 일기처럼 담담하고 조용했다.
요란하지 않아서 더 관심이 가는 동네인 카미마에다에서 조용히 걷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필자는 어느 겨울 아침 옷깃을 여미며 카미마에다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전차가 마을과 인사하는 곳_ 세타가야선 카미마에다역
카미마에다에 가려면 시부야에서 케이오선을 타고 시모키타자와를 거쳐 사사즈카역에서 환승을 하고 다시 세타가야선을 타야한다. 카미마에다는 그 중에서도 종점 가까이 위치해 있다. 전차는 한칸짜리로 매우 조그만 열차였다. 도쿄 한복판에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전철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느렸는데 어찌보면 그 속도는 여행지의 감성을 닮은 것 같았다.
카미마에다역은 단층짜리 작은 목재 건물로 자동 개찰기 없이 개찰원이 티켓을 받고 있었다. 사람이 직접 티켓을 받는다니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졌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좁은 골목이 시작되는데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으니 마치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의 시골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칸짜리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인사하는 풍경은 도쿄에서는 보기 힘든 명장면이었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골목 캠퍼스
카미마에다의 골목은 평범하다. 이곳에 특출난 관광지 같은건 없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면 느껴지는 공간과 공간 사이의 매력이 있다. 상점 간판은 손글씨로 되어 있고 건물사이마다 필자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에 있다.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은 작은 화분이 잔뜩 놓인 사오리의 정원(さおりの庭)이라는 찻집이다. 10평 남짓으로 보이는 공간 안에 식물과 꽃이 가득했고 커플들이 좌석이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찻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창문을 통해 전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2인석이다. 기차가 천천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이 어떤 사진이나 대화보다 감정을 충만하게 해주는 요소였다.
사오리의 정원을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수제 쿠키를 파는 가게가 나오고 손뜨개 소품점이나 낡은 자전거를 수리해주는 곳이 이어진다. 상점들은 건물일 뿐이었지만 그 공간에서는 잔잔함이 느껴졌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지역에는 미술과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 골목 자체가 창작 캠퍼스처럼 운영된다고 한다.
청춘의 일기장같은 연극 무대 _ ‘Mugiwara Theater’
카미마에다 골목을 걷다 보니 간판이 없는 어떤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은 Mugiwara Theater(ムギワラ劇場)라는 소규모 연극 무대인데 좌석이 50석에 불과한 이 극장은 지역에서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도 하는 실험극장이자 청춘의 일기장 같은 무대이다.
필자는 운이 좋았는데 때마침 그날 저녁에 상연되는 무료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청춘 멜로극이었지만 연기 하나하나에서 청춘의 고민과 열정, 불완전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공연이 다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로 나와 관객들과 인사를 나눌 때의 분위기는 마치 대학 동아리 방에서 나누는 인사처럼 다정하고 살가웠다.
극장에서의 여운이 끝나고 골목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있으니 어디선가 희미하게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밤에 보았던 하늘과 살을 스치는 공기 그리고 골목의 소리까지 그 모든 게 연극만큼 감동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생긴 살아있는 인테리어 같은 골목
카미마에다 골목을 걷다 보면 그냥 예쁜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편안하고 한편으로는 그리웠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벽돌에 낀 이끼와 빨래줄, 그림이 그려진 배전함과 전등 아래 놓인 나무벤치까지 모든 사물과 생물이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같은 살아있는 인테리어 같았다.
한 가게에는 1000마리쯤 접은 종이학이 가득 담긴 유리병 장식이 놓여 있었는데 사장님이 말하길 '이 동네를 지나가는 연인들이 하나씩 접어놓고 간 것'이라고 했다. 이 골목이 젊은 커플들의 숨겨진 데이트 명소로 알려진 건 이런 작은 행동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이뤄낸 공간이라서가 아닐까.
'오늘도 천천히 가세요'
카미마에다 골목은 분평 화려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포인트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건 아마도 이곳의 속도 때문일 것이리라. 전차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지나가고 학생들은 그 속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커플들은 말을 하는 대신 손을 잡고 걸으며 상점의 주인들은 무엇이든 손으로 작품을 만든다. 느릿느릿한 ‘천천함’이 이 골목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천천한 속도가 지금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이다.
필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가게 앞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도 천천히 가세요’라고 쓰인 팻말이었다. 그 문장이 오늘 이 여행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자 카미마에다를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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