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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6편> 가나자와 시의 외곽에서 발견한 천연 온천과 찻집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6. 16:10
가나자와 시의 외곽에서 발견한 천연 온천과 찻집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가 어느새 16편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언제나 그랬듯 관광으로부터 한뼘 벗어난 조용한 가나자와 시 외곽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이곳의 천연 온천에서 몸을 힐링하고 마음으로 우린 차가 머무는 찻집에서 마음을 힐링하는 여행속으로 지금부터 들어갑니다.
가나자와 외곽의 골짜기 마을을 찾아서
오전 10시가 막 되었을 무렵 가나자와에 도착했다. 많은 여행객들이 그렇듯 필자도 처음엔 겐로쿠엔과 21세기 현대미술관을 구경하고 히가시차야 거리를 둘러보려 했다.
그런데 여행의 첫날 밤에 숙소 근처 작은 이자카야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의 대화에서 내 계획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그는 '가나자와 관광지도 보기는 좋겠지만 진짜 가나자와를 담고 싶다면 저 바깥으로 가야한다' 고 했다. 외곽 산쪽 골짜기에 있는 온천과 찻집을 가보면 몸도 머리도 개운해진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듣고 이내 마음이 움직였다.
다음 날 아침 필자는 여행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 그 현지인이 알려준 주소 하나만 든채 가나자와 외곽의 골짜기 마을 야와타(八幡)로 향했다.꽃과 개울이 안내해준 작은 마을 야와타
야와타는 가나자와 중심지에서 버스로 30분을 가고 다시 버스 정류장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도에는 ‘야와타 천연온천’이라는 지명으로 아주 조그맣게 표시되어 있는 이곳은 산과 들판 사이에 자리잡은 조용한 마을로 논밭과 나무집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 동안 길가에 핀 들국화가 한들거리며 반갑게 인사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개울 소리가 마음을 정돈해주었다. 이곳은 여행객이 딱히 볼거리가 없는 자연의 풍경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대신 멈추어 서서 여유롭게 돌아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야와타의 온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소박한 모습이었다. 크고 현대적인 온천 시설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소박할 줄이야. 지역 주민들이 평상시 오가는 목욕탕에 가까운 공간처럼 보이는 야와타 온천은 입구가 나무 간판으로 되어 있었고 한쪽 벽엔 '천연유황, 온도 41.5도'라는 손글씨가 붙어 있었다.
야와타 마을의 일상인 온천에서 즐기는 따스함
야와타 온천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니 프런트에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필자를 보자 외국인은 처음 이라며 쑥스럽게 웃으셨다. 입욕료 400엔을 내고 작은 수건 하나를 받아 탈의실로 향했다.
겉과 달리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돌로 만든 노천탕과 나무 바닥으로 된 실내탕이 대비되었고 한쪽에는 온천수가 흐르는 조그마한 족욕장도 겸비되어 있었다. 필자는 먼저 나무로 된 실내탕에 몸을 담갔다. 온천은 뜨거울 것 같았지만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정확히 몸이 원하던 온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참 동안 몸을 담그고 있자 점점 숨이 깊어졌다. 그동안 쌓아있던 피로가 조용히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필자의 뒤로 현지인처럼 보이는 어르신 몇 분이 들어오셨는데 낯선 외지인인 필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모두 목욕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을 경로당에 일상을 즐기러 오는 듯이 온천에 들어왔다. 바로 이 마을의 정감어린 모습 그 자체였다.
차노야마(茶の山)에서 우려낸 야생차 한 잔
따스한 온천을 마음껏 즐기고 난 후 근처에 있는 찻집을 찾았다. 온천에서 만난 주인 할머니가 말하길 온천에서 나오면 약속이나 한듯 모두 찾아가는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차집이라고 했다. 찻집의 이름은 차노야마(茶の山). 오래된 2층짜리 목조 가옥이었고 찻집 입구에는 '오늘의 차 : 야마노시타 야생차 향온(香温)'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매일 그날의 차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요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익숙한 다다미 냄새가 풍겨왔다. 부드러운 황토색 조명이 보이고 한쪽 벽에는 오래된 찻잔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찻집의 중앙에 차를 우리고 있는 고상해 보이는 노부인이 앉아 계셨다.
“어서 오세요. 온천 다녀오셨나 보네요. 온천을 한 후에는 몸을 보해줄 따뜻한 야생차가 제격이에요.”
필자는 노부인의 추천을 받아 오늘의 차인 향온차를 주문했다. 이 마을 뒷산에서 자생하는 품종의 찻잎인 야생차는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여 채취한 후 그늘에서 말린다고 했다.
야생차와 함께하는 시간의 향기
작은 도자기 잔에 담긴 맑은 황금빛 첫 잔이 나왔다. 향이 깊고 맛은 부드러우면서도 맑았다. 입 안으로 한 모금 퍼져나가자 야생차가 자라나는 이 동네의 땅과 바람의 냄새가 느껴졌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 개념을 완전히 잊고 그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몰입하게 되었다.
노부인이 차를 우려내며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차는 급하게 마시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천천히 맛보세요. 차의 온도는 마음의 온도와 닮아 있답니다.”그 말을 듣고 필자는 눈을 감은 채 찻잔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마음 안에서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가나자와의 외곽에서 발견한 진짜 가나자와
오랜시간 차를 음미한 후 찻집을 나와 다시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온천과 찻집, 들판과 개울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전의 다른 도시에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였다.
관광 명소라 불리는 곳이 주는 감동은 의외로 빠르게 소모된다. 하지만 가나자와 밖의 야와타 마을에서 보낸 하루는 천천히 내 안에 스며들어 오래도록 머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 필자는 근처의 길을 따라 조용히 더 걷기로 했다. 이 마을은 소리없이, 말없이 그저 보여주는 곳이었다. 존재 자체로 여행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소 야와타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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