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9편> 고치현에서 만난 고요한 어촌 마을과 바다 이야기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8. 20:26

    고치현에서 만난 고요한 어촌 마을과 바다 이야기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9편은 고치현의 히가시우라입니다. 파도 소리보다도 조용한 어촌 마을과 바닷가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바닷마을 끝에서 만난 간만의 휴식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고치현 어촌마을 이야기

     

    나만의 기록을 위해 찾은 고치현의 히가시우라

     

    여행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순간부터 필자는 인터넷에서 일본의 덜 알려진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화려한 대도시나 SNS에 자주 오르내리는 여행지가 아니라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일상을 간직한 마을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찾기 시작하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바로 고치현(土佐・高知)이었다.
    고치현은 일본 시코쿠 지방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좁은 땅에 인구도 적고 대중교통은 불편한 화려함의 정반대에 있는 장소였다. 그렇지만 그 모든 조건들이 필자에게는 그 곳만의 풍경을 더욱 깊게 만날 수 있는 예고처럼 느껴졌다. 특히 블로그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써있는 히가시우라(東浦)라는 이름의 작은 어촌 마을은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런 점이 오히려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장 여행의 목적지로 고치현을 선택했다. 이번 여행은 그저 나만의 기록을 위한 여행이었다.

     

    교토에서 5시간을 이동한 끝에 닿은 바다 마을 

    고치현은 결코 가깝지 않았다. 아니 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교토에서 출발해 오카야마를 경유하고 다시 특급 열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 끝에 우스키역(宿毛駅)에 도착할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필자가 원하는 목적지인 히가시우라를 볼 수 있었다.

    마을 버스 차창 밖으로 조금씩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궁금증에 목을 빼고 들여다보았지만 흔히 볼수 있는 푸른색 해변이 아니라 회색 빛 방파제가 보였다. 그 옆의 정박지에는 오래된 어선이 둥실 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골목길은 상당히 조용했고 양 옆으로 낮은 목조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곳곳에 낡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상점들은 ‘폐업’이라는 붉은 글씨만 남긴채 굳게 문을 잠그고 있었다.

    어찌보면 무서울법도 한데 이 마을에는 이상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조용한 바다와 기름에 생선을 튀긴 냄새, 짠내나는 옷을 빨아 널어놓은 냄새들로 가득한 이곳은 여행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자리였다.

     

    어촌 식당에서 맛본 오래된 손맛

    오랜 여정 끝에 정오가 되었을 무렵 발견한 작은 식당 하나가 문을 열고 있었다. 간판도 없이 입구에는 '오늘 메뉴 정어리 튀김'이라는 손글씨만 붙어 있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자 60대로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메뉴가 한정판인 식당이기에 필자는 볼것도 없이 정어리 튀김을 주문했고 잠시 후 작은 쟁반 위에 올려진 음식이 나왔다. 밥과 된장국, 오이 절임 그리고 오늘의 메뉴 정어리 튀김 두 조각이었다.

    정어리 튀김을 한 입 베어물자 바삭한 소리와 함께 입 안으로 짭짤한 기름기가 가득 채워졌다. 된장국을 마시자 익숙하지 않은 시골 된장의 구수함이 퍼졌다. 화려하지도 풍성하지도 않은 식사였지만 이 마을에만 존재하는 맛이 분명했다.

    필자가 맛있게 먹고 있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기 힘들지 않았나요? 요즘은 손님이 거의 없어요. 찾아보기 힘들죠. 그래도 바다는 매일 거기 있어요.”

    그 말이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곧 일상이자 기억이자 삶의 전부인 것이다.

     

    고요한 폐가와 살아있는 마을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마을을 들어서 안쪽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진 한때 번성했던 골목의 흔적이 역력했다. 어린이 놀이터였던 곳은 이미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잡초가 무성했고 빈 가옥의 창문으로 바닷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몇몇 집은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입구에 가지런히 신발이 놓여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한 아이가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폐가 옆에서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에 알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스러져감과 동시에 살아있는 마을을 힘이랄까.

    마을의 끝자락에는 이곳을 지켜주고 있는 작은 신사가 있었고 그 옆으로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을 걸으며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곳엔 볼 것은 없었지만 생각할 것은 가득했다.

     

    바다가 전해준 소리 없는 위안

    해변을 걷다보니 어느새 바닷가에 있는 방파제에 닿았다. 그곳에 앉아있으니  파도는 쉼없이 들이치고 바람은 점점 차갑게 느껴졌다. 늦은 오후, 해는 천천히 기울었고 바다 위로 은은한 오렌지빛 노을이 퍼져나갔다.
    그 아래에서 필자는 아무 말없이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순간 문득 이 마을이 필자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으니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 돼요.' 라고 마치 속삭이는 듯 이야기하는 바다앞에서 어떤 위안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한 건 그 소리가 조용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마을 _ 히가시우라

     

    저녁이 되어서야 필자는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멀어져가는 마을을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소리 없는 골목과 해변의 파도, 굳게 닫힌 상점과 굽은 담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누군가는 이제 없어질 마을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 마을은 조용히, 묵묵하게 아직도 살고 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필자는 메모장을 꺼내 그날 보았던 풍경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이곳을 사진보다 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히가시우라는 지도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이제는 나의 마음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마을로 자리잡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