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8편> 혼슈의 눈 덮인 소도시 '츠루노 유' 온천 체험과 설경 속을 걷다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8. 13:07

    혼슈의 눈덮인 소도시 '츠루노 유' 온천 체험과 설경 속을 걷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8편 오늘은 혼슈 북부의 소도시 '츠루노 유'의 온천에서 따뜻한 물 속을 체험해보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번지는 입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요한 겨울의 하루 속에서 설경을 걷는 체험을 하러 떠납니다.

     

    일본 현지인 숨겨진 여행지로 혼슈 북부의 츠루노 유 온천과 설경

     

    세상에서 눈이 가장 아름답게 쌓이는 곳 _츠루노 유

     

    도쿄의 겨울은 바람은 찬데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눈이 오지 않는 도시의 시끄러운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마음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쳐가던 어느날 필자는 문득 새하얀 눈이 보고싶어졌다. 새하얀 눈속 온천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세상만사가 모두 편안해질 것 같았다. 곧장 컴퓨터를 켜고 눈이 가장 아름답게 쌓이는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지역이 있었으니 바로 아키타현(秋田県)이었다. 혼슈 북부의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츠루노 유 온천(鶴の湯温泉)'이라는 전통 온천이 있었다. 이 온천은 단순한 일반 온천이 아니라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진짜 료칸 온천으로 한겨울이 되면 온천탕 위로 눈이 쌓이는 풍경을 지닌 일본 수묵화처럼 고요한 온천이라고 했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찾던 그곳임을 직감한 필자는 곧바로 신칸센 표를 예약했다.

     

    눈으로 덮인 세상_ 츠루노 유로 가는 길

    눈덮인 세상인 츠루노 유로 가는 길은 다소 멀었다. 아키타 신칸센을 타고 도쿄역에서 약 3시간을 달려서 다자와코역(田沢湖駅)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료칸 셔틀버스를 타고 산길을 달려야 츠루노 유에 닿을 수 있었다. 

    필자가 도착했을때 그곳은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있었고 하늘은 뿌연 회색빛으로 물들어 도심과는 다른 하얀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버스가 멈춘 지점은 좁은 산골짜기였는데 그곳은 검은 나무기둥으로 지어진 오래된 일본식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대하던 츠루노 유에 다다랐을때 외관부터가 압도적이었다. 간판도 보이지 않고 단지 현판에만 ‘鶴の湯’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어떤 인위적인 수정없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했다. 신발을 벗고 나무로 된 마루를 걸어 프론트로 향했다. 직원들은 모두 기모노 차림이었고 필자에게 먼저 따뜻한 보리차를 내어주었다. 눈길에 지쳐있던 여행객인 필자는 그순간 직감했다. 이곳이 내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설경 속의 노천탕에서 특별한 시간을 공유하다

    츠루노 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노천탕이다. 온천탕은 남녀 혼탕이며 시간대에 따라 여성 전용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필자는 궁금한 마음에 얼른 탈의실에서 흰색 유카타를 걸친 후 조심스레 노천탕으로 향했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눈이 마치 햇빛처럼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탕에 이미 몇 명의 현지인이 조용히 몸을 담그고 있었다.

    필자도 온천 물에 발을 담갔다. 첫 감촉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온천 물이 마치 내 살결처럼 몸을 감쌌고 유황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며 피부를 자극했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눈송이가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몸은 따뜻한 물에 잠겨있고 머리 위엔 차가운 공기가 맞닿아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인 낯선 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앉아 단 하나의 풍경을 공유하고 있는 이 시간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츠루노 유 온천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을 맛보았다고나 할까.

     

    설경을 따라가는 사치스러운 산책

    온천에서 몸을 녹이고 나와 필자는 료칸 직원에게 근처 산책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츠루노 유 주변으로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흰 눈길이 몇 군데 있다고 했다. 이내 발길을 산책로로 돌려 보니 눈부신 백색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는 마치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인적이 드물어 걷는 내내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들리는 건 오로지 나에 숨소리와 뽀드득 눈 밟는 소리,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뿐이었다.

    산책하는 길가에 작은 사당이 있었는데 그 앞에 누군가 눈 위에 써놓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また来ます' _다시 올게요.

    그 글씨를 바라보다 필자도 조용히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런 설경 속에서 조용히 걷는 모습은 도시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치스러움을 오롯이 만끽하는 순간 필자의 마음속에 천천히 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료칸에서의 저녁 밥상에서 얻은 삶의 온기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료칸의 등불이 하나둘 켜질 즈음 필자가 묵는 다다미방에 저녁 식사가 차려졌다. 츠루노 유의 저녁식사는 다이닝 룸이 아니라 투숙객 각자의 방에 직접 차려주는 전통 가이세키 정식이다.

    다다미방의 문을 열자 작은 접시에 정갈하게 놓인 계절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산에서 채취한 산채나물과 눈 속에서 보관된 무 그리고 연근, 담백한 회, 마지막으로 마타기나베(마타기 전골)까지 풍성하기 그지없었다. 마타기나베는 지역 사냥꾼들의 전통 요리로 알려져 있는데 멧돼지 고기와 채소를 된장 육수에 끓여 낸 음식이다.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삶의 온기가 느껴졌다. 오랜시간 사냥에 지쳤을 옛 사냥꾼들의 주린 배와 한기를 그대로 녹여줄만큼의 맛과 따스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창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방 안에 켜진 촛불은 따스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정적의 공간

     

    TV도 없고 전파도 약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온천 시간도 정해진 때에 해야하는 츠루노 유는 어떤 의미로는 불편한 공간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불편함이 결국 나를 쉬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요소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은 그쳤고 다다미방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보니 깊은 숙면이 찾아왔다. 지금까지의 어떤 고급 호텔에서 잠을 잤을 때 보다도 더 깊게 아주 푹 잠이 들었다.

    츠루노 유는 단순히 여느 온천이나 숙소가 아니라 여행객이 정적을 즐길수 있도록 배려된 공간이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