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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5편> 후쿠이현 해안의 도진보 마을에서 보낸 하루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5. 21:49
후쿠이현 해안의 도진보 마을에서 보낸 하루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5편으로 이야기 할 곳은 후쿠이현 도진보 마을에서 본 해안의 절경과 그곳을 따라 조용히 걸으며 만끽한 어느 하루의 기록입니다.
화려하지 않아 선택한 후쿠이현의 도진보
일본을 여러 차례 여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늘 유명한 장소가 아닌 화려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도쿄의 야경도 좋고 교토의 고고함도 아름답지만 이상하게 필자의 마음은 언제나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도 화려하지 않은 낯선 곳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도쿄도 교토도 오사카도 아닌 후쿠이현(福井県)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도 가장 끝자락의 바다와 맞닿은 곳인 도진보(東尋坊)라는 이름의 마을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당첨되었다. 이 마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여행 잡지에서 본 짧은 문장 때문이었다.'사람이 조용히 설 수 있는 절벽의 끝, 도진보'
필자는 그 짧은 문장의 강렬함에 이끌려 도진보행 열차표를 끊었다. 그곳이 어떤 풍경을 선물해 줄지 콩닥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거대한 주상절리 절벽이 펼쳐지는 도진보로 들어서다
도진보는 먼 곳이었다. 후쿠이역에서 에치젠 철도를 타고 미쿠니역(三国駅)까지 이동한 후 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 길고 다소 불편한 이동을 감수해야 필자가 원하는 도진보에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여정 속의 풍경 자체가 이미 이전과는 다른 여행의 일부였다. 창밖으로 차츰 바다가 가까워지면서 조용한 어촌 마을의 분위기가 서서히 다가왔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을 걸으며 필자는 바다마을 특유의 짠내를 맡음과 동시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곧이어 시야가 탁 트이면서 거대한 주상절리의 절벽이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절벽이 주는 고요한 압도감에 말문이 막힌 순간 눈앞에 보이는 그것이 바로 도진보였다.도진보의 절벽은 끝이 아닌 시작
도진보는 절경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현무암이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수십 미터 높이의 수직 절벽이 쭉쭉 뻗어 있고 그 끝으로 동해의 푸른 물결이 이어져 있었다. 짧은 문장으로 보았던 도진보를 직접 마주한 순간,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았다.
절벽 아래로 거친 파도가 끊임없이 절벽을 때리고 멀리서 갈매기 몇 마리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해안을 날아다녔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절벽 앞에 선 나는 고요한 침묵 속에 잠겼다. 문득 이곳의 절벽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버리지 못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마치 바다 바람에 날려가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절벽 아래 도진보 마을에서의 밥 한끼
절벽의 절경을 천천히 감상한 뒤 필자는 해안길을 따라 아래쪽에 있는 도진보 마을로 내려갔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절벽까지만 보고 발길을 돌리지만 진짜 도진보는 그 아래에 있었다.
좁은 골목에 낡은 간판이 걸린 허름한 상점들 그리고 그 골목 어귀에서 만난 작은 식당이 있었는데 마루야 식당(まるや食堂)이라는 이름의 고등어구이 음식점이었다. 가게 앞에 고등어를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안에는 동네 어르신들 몇 분이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필자는 생선 굽는 냄새에 이끌려 고등어 소금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반찬으로 직접 만든 명란젓과 감자조림, 된장국이 곁들여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갓 지은 쌀밥이 감탄을 자아냈는데 마치 해안가에서 맡은 바닷바람이 그대로 밥상 위에 올라와 있는 것 같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혼자 온 거냐며 필자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했다.
“여긴 여럿이 오는 거 보다 혼자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래도 바다가 다 들어주니까 외롭지 않을거에요.”절벽 위 석양 앞에서 바다와 나눈 마지막 인사
든든히 밥을 먹은 후 오후 5시가 가까워질 무렵이 되어 필자는 일몰을 보기 위해 아까 그 절벽 위로 다시 올라갔다. 바다는 해질 무렵이 되자 점점 금빛으로 변했고 절벽도 신기하게 회색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그 붉게 물든 빛깔이 부드럽게 느껴지면서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기분이었다.
절벽 아래로 여전히 거친 파도가 치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장가처럼 들렸다. 필자는 절벽 끝에 있는 바윗돌 위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이 마을에서 보낸 하루를 천천히 떠올렸다. 주상절리 절벽의 압도적 절경과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과 소금에 구운 고등어구이 먹을때의 따뜻함까지 모든 조각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완성된 기록을 만들어냈다.
도진보, 조용한 쉼과 시작의 장소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필자는 창밖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절벽을 떠올렸다. 바윗돌 위에 앉아 있었던 사람의 흔적과 누군가 돌 위에 새겨놓은 듯한 손글씨, 강렬함보다 따뜻함이 더했던 노을의 감촉까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절벽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곳은 마음의 고뇌가 잠시 멈출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필자에게 도진보는 위험한 절벽이 아니라 마음의 고뇌가 멈추는 장소였다. 여행객이 남긴 사진보다, SNS 해시태그보다,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보다 더한 추억이 남는 곳. 누군가는 도진보를 위험한 장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곳을 조용한 쉼과 시작의 장소로 기억할 것 같다. 삶의 긴 항해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일 때 잠시 찾아갈 곳을 찾는다면 그건 도진보일 것이다. 아주 조용하고 단단한 위로의 공간 도진보라는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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