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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2편> 홋카이도 소도시, 쿠시로의 아침시장과 가정식 여행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4. 19:20
홋카이도 소도시, 쿠시로의 아침시장과 가정식 여행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2편은 홋카이도 편입니다. 삿포로도 오타루도 아닌 현지인의 자랑거리이자 쿠시로의 부엌이라 불리는 아침시장과 간만에 현지 가정식을 먹기 위한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여행자의 감각을 깨워주는 도시 쿠시로
홋카이도를 여러 번 여행해 보았지만 언제나 약간의 갈증이 남았다. 삿포로도 좋고 오타루도 예쁘지만 이런 관광지같은 곳 말고 홋카이도에서 진짜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의문과 함께. 그런 의문을 시작으로 찾아낸 곳이 바로 홋카이도 동쪽 항구 도시 쿠시로(釧路)였다.
이름만 봐선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 같기도 하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쿠시로는 나름 홋카이도에서 가장 늦게까지 안개가 남는 도시로유명하다. 여름에도 시원한 날씨 덕에 해산물은 신선하고 그만큼 맛있어서 현지인들은 도쿄보다 밥이 맛있는 동네라고 자부할 만큼 음식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히 현지 음식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쿠시로의 아침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새벽 6시부터 차가운 공기를 뚫고 쿠시로의 아침시장으로 출발했다.
쿠시로의 부엌 _ 와쇼 시장에서 만들어 먹는 나만의 덮밥
쿠시로역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와쇼시장(和商市場)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쿠시로의 부엌'이라 불리고 있다.
이런 말처럼 그날 그날의 해산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와쇼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비릿한 생선 냄새가 밀려오면서 어시장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오늘 새벽에 들어온 연어알 있어요. 이 성게는 진짜 달아 한번 먹어봐요”그리고 이 시장은 특이하게 카이센동(海鮮丼, 해산물덮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 문화가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300엔을 내고 흰밥만 든 그릇을 받은 후 시장 내에 있는 점포들을 돌며 마음에 드는 해산물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밥위에 올려주는 방식이다.
필자는 가장 먼저 진한 주황빛의 연어알을 골랐고 다음으로 버터처럼 부드럽고 달다는 성게알, 마지막엔 큼지막한 가리비를 추가해 덮밥을 완성했다. 점포마다 생선 가격은 다르지만 전체 덮밥을 구성하는데 1,500엔도 채 들지 않았다.
푸짐하게 완성된 나만의 카이센동을 들고 시장 구석에 구비해 놓은 공용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한입 떴을 때! 입 안으로 퍼지는 신선한 생선의 단맛과 짠맛 그리고 식감의 조화가 말그대로 예술이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회덮밥보다 압도적인 맛이었다.
여행객이 많은 홋카이도 남부와 달리 이곳은 음식을 고르는 손끝에 현지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해안가 산책 안개 낀 바다에서
아침부텅 정찬을 든든히 먹은 뒤 필자는 와쇼시장을 빠져나와 쿠시로강의 하구 쪽으로 걸어갔다. 쿠시로는 아침 안개가 유달리 짙게 끼는 도시이다. 햇빛 대신 안개의 부드러운 회색빛이 도시에 퍼져 나가면서 강물 위로 흐르는 안개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몽환적이다.
쿠시로강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선 몇 척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뒤로 작은 갈매기 떼가 날아다녔다. 사람들의 분주한 인기척 보다 새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 필자의 걸음도 함께 천천히 느려졌다.
여행지에서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있지만 이곳에선 그저 바람을 느끼고 바다 냄새를 맡고 나와의 마음속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마을식당 ‘이치방야’ 에서 먹는 집밥 한 그릇
안개 낀 바다를 만끽하며 산책을 마친 후 와쇼시장 반대편 골목길로 들어서자 작은 현수막이 걸린 식당이 있었다. 간판도 크지 않고 메뉴도 소박한 이곳은 현지 어르신들이 매일 찾는다는 ‘이치방야(一番屋)’ 가정식 식당이다. 필자가 들어서자 식당 안은 이미 동네 어르신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와 생선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 그리고 소곤소곤 들려오는 지역민의 사투리까지 풍경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밥집 그 자체였다.
필자는 두툼한 연어살에 직접 담근 된장을 발라 구운 메인 요리 ‘연어 된장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함께 나온 반찬은 다섯 가지로 절인 무, 시금치 무침과 계란말이, 감자조림, 해조류 샐러드였다. 밑반찬 하나하나 모두 주인장이 직접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음식을 한 입 베어물자 그 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온 몸을 감싸고 음식이 아닌 이 작은 도시의 온기를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맛있나요?”
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 마치 집에서 먹는 밥 같아요.”돌아오는 길에 남겨진 마음의 기록
홋카이도는 흔히 ‘미식의 천국’이라 불린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정확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쿠시로에서 필자가 얻은 건 단순히 맛있는 음식뿐만이 아니라 이 도시를 이루는 모든 감각이었다. 고요한 리듬과 손의 온도 그리고 말없이 나를 받아들인 풍경이었다.
쿠시로에는 화려한 쇼핑도 없고, 유명한 관광명소도 없었지만 하루의 시작을 새롭게 하고 싶은 사람에겐 최고의 여행지다. 필자가 앉았던 와쇼시장의 의자와 한적한 강의 산책길그리고 누군가의 주방을 닮은 밥상까지 모든 것이 오늘 아침의 새로운 기록이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쿠시로역으로 향하면서 짧은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많은 이미지와 감정이 남아 있음에 감사했다.
오늘 하루를 잘 보냈구나 하는 만족감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쿠시로의 항구와 마을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어디에서 무엇을 봤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잘 쉬었는가로 기억된다.’사람의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쿠시로는 필자에게 잔잔하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 아침이 그리워질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천천히 멀어져가는 쿠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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