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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3편> 미야기현의 항구도시 이시노마키에서 전통의 맛, 장어를 맛보다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5. 00:04

    미야기현의 항구도시 이시노마키에서 전통의 맛, 장어를 맛보다!

    오늘은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3편으로 전통의 맛을 찾아 떠날 예정인데요. 미야기현의 항구도시인 이시노마키에서 장인이 만드는 전통 장어를 맛보기 위해 지금 출발합니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마을의 전통장어가게 방문기

     

    화려한 여행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음식을 찾아서

     

    일본 동북부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면서 필자는 대부분의 여행객이 택하는 경로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센다이, 마츠시마, 자오 같은 곳도 물론 좋을테지만 이번만큼은 낯선 동네와 오래된 가게를 방문 해보고 싶었다. 그런 의도로 찾아낸 곳이 바로 미야기현의 항구 도시 이시노마키(石巻)였다.

    이시노마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피해가 복구된 이후로 오히려 단단한 내력을 지닌 곳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발길을 끌었던 부분은 이시노마키에서 100년에 가까운 전통을 이어온 장어 가게였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 블로그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은 장어가게 ‘오오우나기(大鰻屋)’가 바로 그 곳이다. 간판도 없이 손님은 그저 입소문만으로 물어물어 찾아온다는 오오우나기를 향해 필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조용한 항구도시 이시노마키

    센다이역에서 JR센세키선을 타고 이시노마키역에 도착했을때 도시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더 고요하고 단정했다. 아침 9시가 될 무렵의 이른 시간이었는데 역 주변으로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고 도로 옆에로 파도 방지벽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그리고 파도 방지벽 너머로 바닷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골목 곳곳엔 새로운 건물과 오래된 구조물이 뒤섞여 있었는데 대지진의 상처가 조용히 치유되고 있는 듯 했다. 이 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가 계속되는 공간이었다.
    필자는 지도를 보지 않고 오로지 감각을 활용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골목을 들어서자 어느 오래된 주택가 모퉁이에서 나무 문살이 달린 낮은 가옥이 보였다. 그리고 작은 흰 천막 아래 "うなぎ"라는 글씨가 손으로 적힌 작은 목판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인 오오우나기였다.

     

    간판 없는 장어집 오오우나기에서 

    오오우나기의 문을 열자마자 필자는 묘한 향에 사로잡혔다. 숯불에 간장이 눌어붙은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그것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테이블 4개에 카운터석이 5개 정도 뿐인 전체 좌석이 20석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에 오래된 흑백 사진과 일본식 족자가 걸려 있었다.

    가게 안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고 주인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70대 남성이 장어를 굽고 있었다. 그는 필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いらっしゃい。ひとりですか。”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나요?)

    필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조용히 이곳은 오로지 장어덮밥만 할뿐 다른 메뉴는 없다고 말했다. 가격은 2,500엔.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그 가격이 너무나도 저렴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날 필자가 받은 건 단지 장어 한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숯불 위의 장어에서 전해지는 이시노마키의 세월

    장어덮밥을 만들기 위해 그는 부엌 한 켠에서 이미 손질해 놓은 장어 한 마리를 꺼냈다. 간장 소스를 바르고 숯불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놓았다. 그의 재빠른 손놀림에는 부산스러움 대신 오랜 시간의 반복이 만든 정갈함이 있었다.
    장어는 타닥타닥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갔고 그는 일정한 간격으로 소스를 덧발랐다. 향이 점점 진해지고 더불어 필자의 마음 속에서는 기대와 설렘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약 20여분 후 지났을까. 검은색 나무 쟁반 위에 밥이 가득 담긴 사각 그릇과 그 위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장어 한 마리가 얹혀 있었다. 곁들여진 반찬으로는 오이 절임, 된장국과 고추냉이 잎이 살짝 올려진 작은 그릇이 함께 나왔다.

    첫 수저를 조심스럽게 떠서 한 입 베어물었을때 장어의 겉은 바삭한데 살은 매우 부드러웠고 양념은 달지 않고 깊은 맛이 돌았다. 밥과 장어가 혀에서 섞이는 그 찰나, 몸 안으로 따뜻함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음식을 삼키는 행위가 아니라 이 지역의 세월과 함께한 사람의 이야기를 맛보는 것 같았다.

     

    주인장과의 대화 그리고 이어진 기억의 한 조각

    식사를 다 마친 후 필자는 주인장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언제부터 이 가게를 하셨습니까?”

    그는 아버지가 이 가게를 시작한 것이 1946년이었고 그당시는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간절히 원할때였다고 했다.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버지를 도와 여기서 불을 맡았고 그뒤로 장어를 구우면서 한 번도 불 위를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손에 불을 데인 적은 수없이 많았고 대지진이 났을 당시에는 장어가 아예 들어오지 않아 몇개월 간 장사를 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 어느 손님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여기 장어를 먹기 위해 살았던 거 같다고.
    그는 그 말이 잊혀지질 않아 다시 불을 피웠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는 묘한 울림을 느꼈다. 이 장어덮밥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겨진 삶의 흔적이었다.

     

    이시노마키를 떠나는 길에 가득 차오른 마음

     

    대화를 마치고 문을 나서려는 필자에게 주인은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우리 가게에서 간장으로 만든 쯔케모노(절임)입니다. 가져가서 드셔보세요.”

    그 봉투에 담긴 것은 이시노마키가 건네는 가장 따뜻한 인사였다. 필자는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봉투를 가방 속에 넣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여행은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구나.

    관광 명소도 인증샷도 결코 필요치 않았던 이시노마키 골목에서의 한 끼와 그 한 끼를 만드는 장인의 손, 말없이 건넨 따뜻한 인사가
    지금까지 그 어떤 여행보다 선명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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