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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4편>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시골 철도, 와카야마 전철 키시선에서 보낸 하루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5. 10:15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시골 철도, 와카야마 전철 키시선에서 보낸 하루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4편은 매우 특이하게 일본의 시골 철도여행입니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 역장이 기다리는 가장 귀여운 철도, 와카야마 전철 키시선에서 보낸 하루 속으로 이제부터 들어갑니다.
철도 그 자체가 목적인 여행을 하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할 때 필자는 늘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 도심의 빠르고 효율적인 지하철과는 다른 교통수단이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조용하고 느린 시골 기차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 여행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 끝에 알게 된 철도 노선이 있었다. 바로 일본 와카야마현의 와카야마 전철 키시선(和歌山電鉄 貴志川線)이다.
와카야마 전철 키시선의 노선은 총 길이 14.3km, 정차역 14개, 총 소요시간 약 30분으로 이 노선의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유명한 고양이 역장, 키시역의 타마(たま)가 있었다.여행지가 목적이 아니라 철도를 타는 경험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여행을 하기 위해 이번 여정이 시작되었다.
와카야마역 플랫폼에서 마주한 키시선 딸기열차
오사카 난바역에서 난카이선 급행을 타고 약 한 시간 반을 내달려 와카야마역에 도착하자 ‘WAKAYAMA ELECTRIC RAILWAY’라는 표시가 눈에 띄었다. 키시선은 JR이 아닌 민간 전철로 플랫폼도 역시나 작고 열차 역시 단칸 뿐인 열차가 대부분이었다.
필자가 탑승한 차량은 키시선에서도 인기 편성 중 하나인 이치고덴샤(いちご電車) 즉 딸기열차 였다. 하얀색 열차 외부 차체에 딸기 일러스트가 가득했고 열차 내부로 들어가자 좌석, 천장과 벽지까지 모두 딸기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그 공간만큼은 열차가 아니라 마치 어린이 동화책 속의 한 장면처럼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키시선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고 차량의 속도가 느려서인지 철로 위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소박한 리듬감을 전해줬다. 고급 열차의 부드러움 대신 옛 기차의 정겨움이 묻어났다. 기차의 창밖으로 논밭과 민가, 간간이 전봇대가 보이고 하늘 위로 구름이 조용히 흘러갔다. 가끔 지나치는 역에서는 학생이 한두 명 보이거나 자전거 탄 노인들 몇명이 전부였다.
키시선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지역과 호흡을 함께하는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중간역 이다카호시에서 잠시 일상을 즐기다
필자가 몸을 실은 딸기열차는 니시노시로, 오카이도, 야마다와 같은 이름의 작은 역마다 천천히 정차했다. 역의 이름 하나하나가 낯설지만 기분 좋은 울림을 남겨주었다.
그 중에서 이다카호시역(伊太祈曽駅)에 잠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플랫폼 옆에 작은 신사가 있었고 승강장 끝에는 철도 안전 기원이라는 종이 부적이 묶여 있었다. 이 역에는 기념 스탬프와 키시선 역장 고양이 관련 굿즈 판매소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필자는 고양이 발바닥 모양의 도장과 역장 메모장을 기념으로 구매했다. 이런 작은 역에 굿즈 판매소라니 의외의 장소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상점이지만 상업적이라는 느낌보다는 마치 지역 마을 사람들이 이것 저것 모아서 만든 동네 박람회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철도와 마을이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풍경이랄까. 그건 정말 보기 드문 일상의 아름다움이었다.
고양이 역장 ‘니타마’가 지키는 마지막 역
30여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역인 키시역(貴志駅)에 도착했다. 벌써 종착역인가 중얼거리며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 필자의 마음속에는 기대와 설렘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정말 고양이 역장이 있을까싶어 둘러본 역사(驛舍)는 일본식 기와지붕의 아담한 목조 건물이었고 입구에 고양이 얼굴을 본뜬 조형물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안내문에는 고양이 역장 니타마(二代目たま)의 출근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필자는 운이 좋았는지 마침 니티마의 출근 시간대에 도착했고 기대감에 천천히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역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유리 방이 있고 그 안에는 하얗고 회색 털이 조금 섞인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하게 꼬리를 흔들며 앉아 있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용히 그모습을 사진 찍고 있었는데 역장 유니폼을 입은 고양이 니타마는 신경도 쓰지 않는듯 하품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평화로워 보여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역의 한쪽 벽에는 초대 역장 타마(たま)의 사진과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수많은 여행객이 남긴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무너져가는 철도 회사를 살리고 지역까지 살리고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필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 순간이었다.사람보다 고양이가 많은 동네
키시역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카페와 농산물 직판장, 타마 카페라고 불리는 고양이 테마 카페가 있었다. 필자는 타마 카페에 들러 창가 자리에 앉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철로를 따라 지나가는 열차를 볼 수 있었다.
딸기와 고양이가 테마를 이루다보니 메뉴도 딸기 파르페와 고양이 쿠키가 시그니쳐였다. 주문을 하고 앉아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철도 종점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기다리는 동안 잠시 역사 앞 골목으로 들어가자 사람보다 많은 고양이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낮잠 자는 고양이, 계단 위아래를 왔다갔다하는 고양이, 마을 어르신이 주는 사료를 받아먹고 있는 고양이까지 온통 고양이 천국이었다. 와카야마의 이 작은 마을은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동화같은 현실세계였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동심을 만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갈때와는 다른 오모챠덴샤(おもちゃ電車, 장난감 열차)였다. 내부는 역시 장난감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작은 책과 장난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타고 있으면 필자도 다시 아이가 된 듯 즐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노선은 단순히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여전히 아이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고 조용한 여정이었지만 필자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
기차와 고양이가 만든 가장 따뜻한 풍경
키시선은 정말 작디작은 철도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꽤 큰 울림을 주었다. 고양이 한 마리의 힘과 지역이 여전히 철도를 지키는 방식 그리고 여행하는 사람이 철도 안에서 어떻게 쉼을 발견하게 되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필자가 느낀 키시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이를 잇는 따뜻한 선(線)이었다. 혹시 여행의 의미를 다시 찾고 싶거나 아무 이유 없이 훌쩍 떠나고 싶다면 와카야마의 열차를 타보는 건 어떨까.
그 열차는 기차와 고양이가 만든 따뜻한 풍경 속으로 당신을 데려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위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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