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1편> 일본인이 조용히 찾아가는 그들만의 비밀 장소 ‘세이노우 산책길’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3. 20:20

    일본인이 조용히 찾아가는 그들만의 비밀 장소 ‘세이노우 산책길’ 여행기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가 어느새 11편까지 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장소는 일본 현지인들이 조용히 발길을 옮겨 찾아가는 그들만의 비밀의 장소로 안내합니다. 후지산을 제대로 볼수 있는 '세이노우 산책길'로 지금부터 떠나보겠습니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일본인들이 조용히 찾아가는 그들만의 비밀 장소 세이노우 산책길

     

    후지산을 제대로 본 적이 있는가!

     

    일본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그 유명한 후지산을 마주한 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백두산, 한라산처럼 일본하면 떠올리는 대표 명산이 후지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와구치호 주변이나 신주쿠에서의 스카이라인 혹은 신칸센 창밖으로 본 적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후지산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순간은 없었다. 항상 너무 멀리 있거나 흐릿하거나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명산을 홀로 조용히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라는 물음에 대해 해답을 주었던 건 도쿄에서 만난 일본 친구였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데 관광객은 거의 없는 세이노우(西濃)에 가보면 산책길이 있고 그 산책길에 놓인 벤치에 앉으면 내가 원하는 후지산을 코앞에서 볼수 있을거라는 그 친구의 말에 그날 밤 여행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필자는 이튿날 새벽 동이 틀무렵 작은 가방 하나만 챙겨 세이노우로 가는 전철에 올라탔다. 바로 후지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도쿄로부터 2시간 30분을 달려 발견한 작은 시골 마을

    도쿄에서 JR 고후(甲府) 방면 특급열차를 타고 약 2시간 정도를 달리고 열차에서 내린 후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더 들어가야 마을 중심에 닿을 수 있는 마을, 세이노우는 야마나시현 남부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 작은 시골마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필자는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진짜로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마을이 필자가 바라던대로 후지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이노우 산책길은 정류장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데 별다른 안내판 없이도 마을 뒷편을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산책길의 입구는 완만한 흙길이었고 왼쪽엔 감나무가 오른쪽엔 민가의 작은 밭이 있었다. 길에는 낙엽이 포슬포슬 깔려 있었고 가을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 어깨를 토닥이는데 마치 어서 가보라는 듯 미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필자는 이 마을의 호흡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후지산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벤치

    세이노우 산책길을 걷기 시작한 지 30분쯤 되었을까. 한 굽이 길을 돌아선 순간, 필자의 눈 앞에 불쑥 후지산이 떡하니 나타났다.

    하늘은 티없이 맑았고,후지산 정상으로 눈이 얇게 덮여 있었다. 거대한 삼각형의 실루엣이 그저 하늘 아래 당당히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 놓여진 단 하나의 벤치가 놓여져 있었다. 후지산을 온통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설치해 둔 듯한 나무 벤치였다. 필자는 가만히 그 벤치에 앉았다. 앉자마자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눈앞에 후지산 풍경만이 점점이 커졌다.

    그 순간 지금까지 내가 봐온 후지산은 여행의 일부분으로서의 후지산이었고 지금 바라보는 후지산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산임을 깨달았다.

    머릿 속에 각인되어 사진보다 오래 기억될 장면

    이 장면을 어떻게 하면 간직할 수 있을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화면을 바라보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진으로 보기보다는 내 머릿 속의 기억으로 간직해야 더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필자는 눈을 감고 조용한 가운데 후지산의 풍경을 마음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후지산 정상을 타고 내려오는 하얀색 윤곽과 산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향기 그리고 필자가 앉아 있는 나무 벤치의 감촉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기억으로 각인시켰다.

    나무 벤치에 누군가 조그맣게  글을 새겨 놓았다.

    'ここでは、風も静かになる' 해석하자면 '이곳에서는 바람조차 조용해진다'라는 의미이다.

    필자는 그 문장을 읽고 다시 한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거기 우뚝 서 있는 세이노우의 후지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여기에 있어달라고.

     

    세이노우 산채 덮밥의 따뜻함

    깊은 여운이 남는 산책을 마친 뒤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점심시간은 훨씬 지나 있었지만 다행히 한 식당 문이 열려 있었다.
    고카야(五花屋)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소규모 식당으로 메뉴는 단촐하게 두 가지뿐이었다.
    야마노사이동(山の幸丼, 산채덮밥)과 된장국 정식 중에서 필자는 산채덮밥을 주문했다.
    살짝 보이는 주방에서 한 여성이 야채를 썰어 볶고 간장과 미림을 붓는 모습이 보였다. 몇 분 지났을까. 곧 따끈하게 볶은 우엉과 두릅, 버섯, 시소잎이 덮여진 산채덮밥이 나왔다.
    한입 떠먹는 순간 산책으로 허기졌던 속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사람 속을 채워주는 건 후지산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그날의 산채덮밥은 빈 속을 채워주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머릿 속 풍경을 꺼내보다

    따뜻한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세이노우 역으로 향했다. 세이노우 역의 플랫폼에는 자판기 한 대와 벽걸이 시계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하고 필자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꺼내던 스마트폰을 그날만큼은 꺼내지 않았다. 음악도 동영상도 틀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낮에 보았던 후지산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머릿 속 후지산은 선명했고 바람의 감촉까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쿄가 가까워질수록 소란스러운 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머릿 속에는 아직도 세이노우의 조용한 풍경이 살아 있었다.

     

     다시 찾고 싶은 후지산을 떠올리며

     

    세이노우 산책길은 유명한 곳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누군가가 ‘후지산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것이다. 세이노우의 산책길, 벤치를 찾아가라고.

    인적도, 소음도 없는 그곳엔 하늘과 산과 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찾고 싶은 후지산을 떠올리며 내가 보았던 후지산은 그저 보는 풍경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거대한 자연이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