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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8편> 히로시마에 가려진 오노미치 골목길 예술촌에서 삶의 리듬을 경험하다!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2. 06:46

    히로시마에 가려진 오노미치 골목길 예술촌에서 삶의 리듬을 경험하다 

    오늘은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8편으로 히로시마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오노미치 골목길 예술촌을 탐방해보고자 합니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로 히로시마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오노미치 골목길 예술촌

     

    예술과 시간이 공존하는 입체적 도시, 오노미치에 가다

    히로시마를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원폭 돔이나 평화공원, 미야지마를 먼저 떠올린다. 필자도 처음엔 이곳들을 방문하기 위해 히로시마에 갔다. 그런데 도착한 첫날 저녁식사에서 현지인과 대화하던 중 ‘오노미치’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오노미치라는 마을이 왜 귀에 꽂혔을까. 현지인의 말을 빌리면 오노미치는 그냥 시골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골목 자체가 갤러리인 예술도시 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필자는 히로시마 여행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히로시마역에서 열차를 타고 약 1시간쯤 갔을까 오노미치(尾道)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노미치역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공기가 느껴지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것은 늘 그랬듯 내가 원하던, 도시가 아닌 동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이제 앞으로 만날 여행은 전통 목조 건물들, 언덕 위로 이어진 돌계단 그리고 골목 골목마다 숨어 있는 작은 카페들과 아틀리에까지 단순한 시골 마을이 아닌 예술과 시간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공간의 오노미치다.

     

    걷는 순간이 작품이 되는 언덕길 골목

    오노미치는 바다를 등지고 형성된 언덕 위의 도시이다. 이곳 현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 중 하나가 오노미치 템플 워크(寺巡りコース)다. 템플 워크라는 말처럼 이 길은 25개의 절이 연결되어 이어진 산책 코스로 각 절의 사이사이로 난 골목과 언덕길을 걷는 형식이다.
    독특한 템플워크가 반가웠던 필자도 예외없이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돌계단은 제법 높낮이가 있었는데 조심조심 발길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저 아래로 항구와 기차길이 펼쳐진다. 담장 위에는 고양이들이 제 집인양 앉아 있고 상점의 낡은 간판에 손으로 쓴 글씨가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히로시마에서 들었던 것처럼 골목 자체가 예술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집 외벽에는 아이들이 그린듯 보이는 벽화가 있었고 우편함 옆에는 작은 도자기 작품이 붙어 있었다. 어떤 집 대문에는 '오늘의 시(詩)  비가 내린 날에는 마음도 가벼워지기를' 이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는데 마치 글귀처럼 조용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걷는 순간 순간마다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감성이 모여 오노미치의 골목은 여행 코스가 아니라그저 감정이 머무는 장소였다.

     

    히라야마 아틀리에와 조용한 예술촌의 풍경들

    언덕길을 오르던 중에 ‘히라야마 가문 아틀리에’라는 작은 간판을 발견했다. 궁금한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이곳은 실제 화가인 그가 운영하는 작업실 겸 갤러리였다. 그는 스스로를 '이 동네의 풍경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큰 창문 옆 책상에 앉아 매일 같은 시간에 골목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가 그렸던 그림 중에 하나가 오늘 내가 걸었던 언덕과 담벼락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구역에는 이렇게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공간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그들이 모이자  평범한 골목이 예술촌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곳에는 캘리그래피 전시관이 있었고 또 다른 곳은 책방과 찻집을 겸한 예술 카페였다.
    특히 ‘비브라토 카페’라는 이름의 아날로그 음반을 틀어주는 곳이 있었는데 잔잔한 재즈 선율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향이 깊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모든 풍경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 같았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독자가 된 느낌이었다.

     

    세토 내해가 보이는 옥상 정원에서 시간의 층위를 걷다

    오후 늦은 시각, 언덕길의 끝자락에서 만난 조용한 장소가 있다. 옛 민가를 개조해서 만든 마을 쉼터 겸 전시 공간인 ‘네코노테 테라스’ 가 바로 이곳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였다. 네코노테 테라스의 옥상에 올라서니 세토 내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바다위를 느리게 움직이는 페리와 햇빛에 반짝이는 파도까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진짜 세토 내해를 볼 수 있었다. 
    반짝이는 파도 때문이었을까. 바닷 바람은 살짝 차가웠지만 마음은 정말 따뜻했다. 하루 종일 걷고 보고 즐겼던 골목의 시간들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여행이란 본래 낯선 곳에서 나를 마주하는 일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오노미치에서 보낸 하루는 여행이 아닌 ‘감정의 회복’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을 따라 걷고 여전히 그 골목을 지켜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그 안에서 내 감정의 결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시간! 그것은 단순히 장소를 탐방하는 여행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경험하는 여행이었다.

     

    눈과 마음으로 바라봐야 알 수 있는 오노미치

     

    해질 무렵이 되서야 역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길에 때마침 노오란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며 골목이 금새 따뜻한 색으로 채워졌다.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오노미치가 남기는 듯한 말을 떠올렸다.
    '여행은 반드시 멀리 갈 필요는 없어. 네 안에 멈출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할 뿐이지. 잘가렴 그리고 쉼이 필요할 땐 다시 찾아오렴'

    여행지보다 더 강렬한 감정을 남기는 도시,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볼땐 보이지 않고 눈과 마음에으로 바라봐야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곳 오노미치! 다시 히로시마를 오게 된다면 필자는 분명 유명 여행지보다 이곳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또 다시 같은 골목을 천천히 걷고 싶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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