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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0편> 도쿄에서 1시간, 오메 산속 마을에서 만난 어느 장인의 찻집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3. 07:31

    도쿄에서 1시간,  오메 산속 마을에서 만난 어느 장인의 찻집

    오늘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10편으로 만나게 될 장소는 도쿄에서 지하철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오메 산속마을 이야기 입니다. 여기 어느 장인의 찻집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오메 산속마을 찻집 이야기

     

    어느날 도시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8시의 도쿄 신주쿠역 풍경은 어떠할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달렸던 리듬에서 한걸음 비껴 있을까.
    주말이지만 지하철 입구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나도 그러했다. 이미 월요일부터 쌓여온 피로의 무게는 목요일즈음 한계치에 다다랐다. 
    주말만큼은 평일 내내 쌓인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몰려왔고 어느새 나는 ‘도쿄 근교에 있는 조용한 산속 마을’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메(青梅)’라는 지명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서울로 치면 양평쯤, 부산으로 치면 기장 같은 느낌이랄까. 번잡한 지역 행사도 없고 정해진 유명 관광코스도 없는 곳.
    대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동네’라는 표현이 이곳을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어느 장인이 30년을 넘게 운영 중인 찻집이 있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산골마을에 장인의 찻집이라구?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홀렸는데 여기에 이런 문구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이 찻집은 차와 함께 마음을 마시는 공간이다.' 나는 주저없이 오메로 떠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메역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신주쿠역에서 출발한 JR 주오선 급행 열차는 약 1시간 남짓 후에 오메역까지 도달했다. 이렇게 빠르게 올 수 있는 곳이었구나.

    오메역의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필자가 선택한 다른 여행지에서도 그랬듯 폐로 스며들어오는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음을 직감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티없이 맑은 공기, 보이는 것들은 오래된 나무와 자연의 천연색 그리고 주말인데도 역사는 매우 한산했다. 역 주변에는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카메라 상점과 목재 간판의 빵집, 작은 찻집이 이제서야 조용히 문을 열고 있었다.

    필자가 가고자 하는 장인의 찻집은 도야마차(登山茶)라는 찻집으로 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있었는데 산쪽으로 천천히 올라가야 했다. 길에 아스팔트는 정비되어 있었지만 인도는 좁았고 길가엔 붉은 단풍과 노오란 은행잎이 발끝까지 쌓여 있었다.

    산속 마을의 아침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간과 공간을 따라 걷는 필자의 몸과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야마차에서 마주한 장인의 차

    자연 속을 걸어 도착한 도야마차 찻집은 마치 가정집처럼 생긴 2층 목조 건물이었다. 입간판은 없었고 현판도 작았는데 '登山茶'라고 적힌 세 글자만 덩그러니 현관문 옆에 걸려 있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풍지 바람 소리와 함께 나무 향기가 풍겨왔다. 가게 안은 소박하기 그지 없었다. 나무 바닥에 작은 화로와 차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인 선반까지. 따뜻한 주황빛 전등이 천장에 매달려 내부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창문 밖으로는 오메의 산자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가 바로 찻집 주인인 도야마 겐이치 씨였다.
    그는 조용하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메까지 오셨네요. 이곳은 오래된 방식으로 차를 내리는 전통 찻집입니다. 고급스러움은 없지만 대신 정직함이 있습니다.”

    필자는 그의 추천을 따라 하루노차(春野茶)라는 차를 주문했다. 찻물 온도 70도에 우리는 시간 45초라고 알려준 뒤 도야마 씨는 말없이 차를 우렸고 그 숙련된 움직임은 차에 대한 존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윽고 찻잔을 건네받아 입에 가져가는 순간, 그저 한모금만으로도 산내음과 나무 향 그리고 희미한 단맛이 입안으로 퍼져나갔다.

     

    차가 식을수록 오히려 따뜻해지는 마음

    찻잔 하나로 시작된 시간의 흐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실제로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마트폰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저 차를 한모금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고 다시 차를 마시고 밖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도야마 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 차는 오우치다케(大内岳) 산기슭에서 자란 야생차입니다. 야생이라서 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았죠. 그래서인지 신기하게 해마다 그 맛이 달라요.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잎의 성질이 단단해졌죠.”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마치 시인이 시를 읊는 듯했다. 그 속에서 필자는 차를 마시는 행위가 단순히 입 속으로 무언가를 넘기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일궈낸 사람의 정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찻잔의 차가 식어갈수록 오히려 마음은 따뜻해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오메의 온도가 내 안에 남았다

     

    찻집을 나서는데 도야마 씨가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오늘 마신 찻잎을 조금 담았습니다. 집에 가셔서 천천히 다시 우려보세요. 이곳에서의 기억이 돋아날 겁니다. 차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니까요.”

    필자는 고마움과 함께 그 말을 마음에 담고 오메역으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보이는 수많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 사진같은 컷으로 남았다. 그리고 도쿄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조용한 찻집 안에서 한 잔의 차에 집중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가방 안에서 도야마 씨가 준 봉투를 꺼내 가만히 쥐어보았다. 그건 단지 찻잎이 아니라 잠시 멈추는 법을 가르쳐준 오메의 온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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