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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5편> 도쿄 사람들이 주말마다 찾는 치바현 소토보 해안 마을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6. 30. 06:58
도쿄 사람들이 주말마다 도망치듯 찾아가는 치바현의 소토보 해안 마을 이야기
오늘은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5편으로 복잡한 도쿄의 사람들이 주말마다 도망치듯 찾아가는 치바현의 소토보 해안마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냥 아무 데라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때 찾는 이곳
복잡한 도시 도쿄에 살다 보면 으레 현실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주중의 일상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까지 갑갑함이 이어지는데 꽉 막힌 도로와 어디든 붐비는 카페, 발디딜 틈을 찾아야하는 지하철을 보고 있으면 쉼이 아니라 또다른 피로감을 양산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쳐 금요일마저 야근을 했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럴때 도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이번 주말만큼은 복잡한 이도시 도쿄를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딱 알맞은 곳이 있다.
멀지 않지만 바다가 보이고 적당히 낯설면서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장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치바현의 소토보(外房) 해안 마을이다.
소토보 해안마을은 도쿄에서 전철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본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마을 힐링지로 통한다. 이곳은 무거운 여행 가방 대신 가벼운 백팩 하나만 챙겨도 전혀 부담없는 여행지다. 그럼 이제 이 해안마을이 어떤 쉼을 안겨줄지 기대하며 떠나보기로 하자.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조용한 마을 공기
JR 소토보선(外房線)을 타고 오하라(大原)역 또는 아와 카모가와(安房鴨川)역에서 내리면 우리가 기다리는 소토보 해안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필자가 아침 8시쯤 도쿄역을 출발해 오하라역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0시쯤이었으니 약 2시간이면 넉넉히 갈수 있는 거리이다.
기차역에 내려 숨을 들이마쉬자 내가 마시는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서울에서 출발해 속초에 도착했을 때처럼 염분이 살짝 섞인 공기와 적막함이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기차역 앞은 조용했고 인적도 거의 없었다. 물건을 파는 상점은 하나도 없이 작은 자판기와 동네를 안내해줄 지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급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보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블로그나 영상 콘텐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쉴수 있겠는데 싶어 오히려 마음이 설레었다.
동네 안내지도를 집어들고 유심히 보면서 해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딱 봐도 오래된 슈퍼마켓과 층이 낮은 민가가 쭈욱 이어지고 전선을 따라 열맞춰 앉은 까마귀들까지 모든 풍경이 정겨웠다.소토보의 바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
해안선을 향해 약 15분 정도 걷었을까 거짓말처럼 눈앞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소토보 해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었다. 모래사장은 곱고 파도는 잔잔했으며 무엇보다 여행객이라 볼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필자 외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낚싯대를 들고 있는 중년 남성과 손을 잡고 해변을 걷는 노부부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소년뿐이었다.
잔잔하게 치는 파도의 소리는 일정했고 그 소리에 장단 맞춰 마음도 점점 평화로워졌다. 여기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같았다.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다시 모래사장을 걷다가 멈추고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도쿄의 일상 속에서는 늘 쫒기듯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시간과 분 단위로 계획을 짜야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 계획 없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차곡차곡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작은 방파제 끝에 이르러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꺼냈다. 겨우 샌드위치 하나였지만 바다의 풍경과 함께 먹으니 유명한 레스토랑의 음식보다도 깊은 맛이 났다. 결국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디서 먹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소토보 해안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소토보 마을의 골목에서 만난 커피 한 잔의 여유
작은 바닷가 마을 소토보에는 이름 있는 카페나 유명한 디저트 맛집이 없다. 대신 주인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커피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가 골목골목마다 숨어 있다.
해변에서 마을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다 보니 '커피와 고양이와 오후' 라는 작은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아 잠든 고양이와 커피향이 풍기는 카페 이미지가 바로 연상되었다. 입간판과 달리 정식 카페 이름은 ‘나츠미의 오후’로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골목의 안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목조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문을 열자 향긋한 커피 냄새가 새어나오고 노란 조명이 켜진 내부가 나타났다. 한쪽 벽으로 책장에 책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창가 자리에는 예상대로 고양이 한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후반의 여성은 도쿄에서 출판사를 다니던 중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마을로 이사해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인즉슨 이 마을에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한다.필자의 최애인 카페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벽에서 에세이집을 하나 꺼내들었다. 고요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 여행객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잊혀졌고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나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대도시 도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쉼이었다.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곳
소토보 마을을 떠나는 기차에 오르기 전에 아침에 걸었던 해변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이제 해가 천천히 저물어 노을이 물들고 있었고 모래사장도 붉게 물들고 있었다.
복잡한 도쿄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내심 아쉽긴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했다. 도쿄에서 도망치듯 떠났지만 이곳을 알고나니 돌아갈 힘을 얻게 된 것 같았다. 사람은 가끔 이유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필요하다. 잘 꾸며진 명소가 아닐지라도 그저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 머무는 것 자체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순간이 있다.
치바현의 소토보 해안 마을은 그런 힐링의 장소가 맞았다. 도쿄에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공기를 가진,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힐링의 장소.
그곳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구도 필자에게 왜 여기에 왔느냐고 묻지 않았고 그저 해안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가만히 숨 쉬었다. 이제는 도시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소토보 마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떠나 소토보의 조용한 바닷가를 걷게 될 것이다.'일본 현지인 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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