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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4편> 나가노 산골 마을의 고즈넉한 겨울을 찾아 시라하타 온천으로 떠나다!
    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6. 29. 19:32

    나가노 산골 마을의 고즈넉한 겨울을 찾아 시라하타 온천으로 떠나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4편으로 오늘은 나가노 산골 마을에서 발견한 한적한 겨울 온천인 시라하타 온천의 실제 방문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나가노 산골마을의 시라하타 온천 여행

     

    오로지 은둔하기 위해 떠났던 나가노의 겨울

     

    자주 다니는 여행이지만 떠날 때마다 늘 ‘어디를 가는게 좋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유명 관광지나 인증샷 명소, SNS에서 화제로 떠오르는 카페들은 즐비하지만 그런 곳을 돌아보고 오면 이상하리만치 더 피곤하기만 하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 없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된 무료한 여행 끝에 문득 어디도 가지 않아도 되는 오로지 은둔을 위해 머무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바로 일본 현지인들만 안다는 나가노현의 한 산골 마을에 자리잡은 시라하타 온천(白幡温泉)이었다.

    시라하타 온천은 아무리 검색해도 소개하는 글 몇 줄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다. 블로그나 구글맵 리뷰도 몇 개 되지 않아서일까. 그만큼 유명하지 않은 숨겨진 곳이라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더 궁금증이 샘솟았다. 시라하타 온천은 가는 길이 험난했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30분을 가고 그 후 로컬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한 시간을 가고 마지막으로는 마을 버스를 타고 산길을 40분 이상 올라가야 다다를수 있는 곳이었다.
    이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벌써 지친 몸을 이끌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맞이한 풍경은 말 그대로 하얀 정적이었다. 인기척조차 거의 없는 이 마을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낯선 곳이었지만 따뜻한 공기가 새하얀 정적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 시간을 잊은 듯한 공간 – 시라하타 온천과의 첫 만남 >

     

    시라하타 온천은 현대식 료칸도 고급 리조트도 아니다. 작고 오래된 건물과 그 옆에 붙어 있는 공중 온천 표시가 오히려 온천 마을 회관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이게 온천이라구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협소한 공간이 있고 손으로 직접 쓴 안내문 몇 장이 벽에 붙어 있었다. 정면의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70대 정도로 보였는데 마치 필자를 손자 대하듯 환한 미소로 반기며 입욕권을 건네주었다.
    입장료는 500엔, 우리 돈으로 4600원 정도로 정말 이 금액으로 제대로 된 온천을 즐길 수 있을까 싶었다.

    의구심을 가득 안고 탈의실에서 옷을 벗은 후 문을 열고 온천으로 들어서자 진짜배기 시라하타 온천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무로 만들어진 실내탕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눈 덮인 나무 숲, 노천탕까지 인위적인 장식은 그 어떤 것도 없었고 보이는 것은 눈과 들리는 소리는 오직 물소리, 바람소리 뿐이었다.
    노천탕의 물은 뜨겁지 않고 미지근한데도 몸 속 깊이 스며드는 따뜻함이 있었다. 물 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몸에 쌓였던 그동안의 긴장이 모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 아무 말 없이 함께 머무는 사람들과 그 속의 온기 >

     

    온천탕에 여행객은 나 혼자였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현지인이었다. 모두 50~60대의 중년 남성들이었고 말없이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은 그누구도 없었고 인증샷은 커녕 사진도 찍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어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말없이 같은 공간에 머물렀지만 어색함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쉬고 있다는 동질감이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몸은 이미 따뜻해졌고 마음은 평화로워 더 이상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이 온천 물 위로 내려앉아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시라하타 온천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누구도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았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쉴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쉼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재정비되고 완충된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나를 되찾은 듯한 기분이랄까.

     

    < 온천 밖에서 마주한 산골 마을의 일상 >

     

    온천에서 나와 밖을 나서니 온천 건물 옆에 작은 휴게 공간이 눈에 띄었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 전기난로가 놓여 있었고 몇 명의 어르신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중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왔나요?”라는 물음에 “그렇습니다. 혼자 여행 중이에요”라고 답하자 할아버지는 단 한마디로 “좋지”라며 웃어주었다. 그리고 이곳은 겨울에만 진짜라고 덧붙였다.

    산골 마을의 겨울은 외롭지만 그 속에는 고요함과 단단함이 담겨있다. 나가노의 이 작은 마을처럼. 자동판매기나 편의점도 거의 없는 불편한 곳이지만 대신 사람의 시선과 손길,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이 있다.
    마을을 걸어 나오면서 필자는 어느 순간 휴대폰을 꺼두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보다는 추억을 남기고 싶었고 SNS보다 가슴 속 깊이 담고 싶은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시라하타 온천이 선물해준 회복의 의미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더 새롭고 더 신기한 것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때때로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큰 의미가 될 때가 있다. 시라하타 온천은 필자에게 그런 공간이었다.
    뭇 사람들에게 이곳은 접근성도 좋지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그저 시골일 뿐이다. 최신 시설은 커녕 볼거리 조차 많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이 나라는 사람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가노의 겨울 산골은 말없이 사람을 맞이해주고 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조용히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그럼 어느새 스스로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진정한 쉼과 회복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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