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인 여행지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32편> 사이타마 외곽의 사이케이 마을에서 전통 된장을 만나다

tnsekfdl 2025. 7. 22. 06:39

사이타마 외곽의 사이케이 마을에서 전통 된장을 만나다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32편으로 도쿄에서 90분 거리에 있는 도시 밖, 사이케이 마을의 된장 공장을 가보았다. 그 발효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전통 된장을 만난 체험 속으로 떠나보자.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로 사이타마 사이케이마을 전통 된장공장을 방문한 이야기

 

된장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의 의미를 찾아서

 

도쿄에서 사무실에 출근과 퇴근을 하는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인가 SNS에서 된장 만들기 체험이라는 키워드가 퍼뜩 눈에 띄었다.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이타마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무려 100년이나 된 전통 발효 공장이 있고 그곳에서 된장 만드는 체험을 할수 있다고 했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된장을 단순한 음식이 아닌 시간과 손맛이 담긴 집안의 상징으로 여겼다. 직접 콩을 삶고 누룩을 빚으며 하나하나의 과정을 모두 손으로 만든 된장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수단이자 생활의 일부였다.

반면에 요즘 현대인들에게 된장은 대체로 마트에서 사는 조미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은 맛보다는 편의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직접 장을 담그는 경험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다만 최근들어 로컬 발효식품이나 슬로우 푸드에 관심을 갖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된장을 단순히 옛날 음식이 아닌 지속가능한 식문화로 인식하려는 흐름도 생기고 있다.

필자 역시 된장은 그냥 늘상 먹는 음식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는데 된장 만들기 체험을 해본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눈길을 끌었다. '발효는 살아 있는 생명이다. 된장이 사람을 바꾼다.'라는 문장들이 적혀있고 어찌된 일인지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필자는 주말에 빈둥거리는 대신 공책과 펜을 챙겨 사이케이 마을의 야마다 고지 된장 공장으로 향했다.

 

된장 공장까지 기차 두 번, 버스 한 번 그리고 기대감 가득

도쿄의 우에노역에서 출발하여 JR 다카사키선을 타고 쿠마가야까지가고 거기서 다시 지역 로컬선을 타고 30분을 간 후에 마지막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야마다 공장에 도착할 수 있다. 기차 두 번, 버스 한 번의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기대감에 부풀었다.

공장은 기와 지붕의 오래된 목조 건물로 입구에 '1912년 창업'이라고 적힌 목판이 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된장의 깊고 구수한 냄새가 공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냄새가 아니라 공기 그 자체였다.

 

손으로 빚어내고 기다리는 과정의 미학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된장 체험 공간은 공장의 안쪽에 오래된 목재 작업실이었다. 그 안에 큰 대야가 있고 삶은 콩이 담겨져 있었고 옆에는 곱게 빻은 쌀누룩과 소금이 놓여져 있었다.

 

“손으로 콩을 으깨주세요. 여기선 손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그 말에 따라 필자는 양손으로 뜨거운 콩을 살짝 움켜쥐었다. 콩은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했다. 살짝 으깨는 순간 고소한 향이 확 다가왔다. 그 감촉이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고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누룩과 소금을 섞는 과정이 이어졌고 수업은 절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진행되었다. 재료는 충분히 섞일 시간이 필요했고 필자 역시 만드는 과정에 몰입할수록 음식이 아니라 시간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과정으로 항아리에 된장 반죽을 넣고 표면을 판판히 다진 후 ‘0000년 개봉 예정’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모든 것이 마무리되면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된장은 만드는게 끝이 아니라 그 후로 3년은 말없이 기다려줘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장인의 눈빛은 결과보다 과정을, 기다림의 미학을 말하는 듯했다. 된장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시간이지만 그것이 발효되기를 기다리는 데에는 3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마치 미래의 나에게 약속을 건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된장의 발효는 기다림의 깊이

된장을 항아리에 담아서 공장 뒤쪽에 있는 작은 발효 창고로 이동했다. 그곳에 약 60개의 항아리가 일렬로 놓여 있었고 항아리마다  그위에 '2004, 2010......' 같은 출생 연도가 적혀 있었다. 같이 있던 직원이 항아리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건 올해로 19살입니다. 이건 아직 아기 같은 된장이죠.”

 

항아리에 적힌 숫자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다림의 깊이였다. 필자가 담근 된장은 아직 이름조차 없었지만 오래된 그 항아리들 사이에 잠시라도 섞여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했다. 내 손으로 만든 무언가가 시간속에서 스스로 익어간다는는 사실이 마치 사람의 성장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떠한 결과가 바로 보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깊어지는 변화의 과정이 사람과의 관계를 비추는 듯 했다.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준 된장이라는 선생님

 

사이케이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그 하루의 기억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가방 속에 들어있는 조그만 된장 항아리와 '0000년 0월 개봉하세요' 라고 적힌 작은 카드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카드에는 아직도 된장이 발효하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필자는 하루종일 맡았던 그 향을 들여마시며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괜히 바쁜 척 서두르면서 쓸데없는 일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이케이 된장 공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필자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밤 주방 수납장 한 켠에 있는 나의 된장 항아리를 떠올린다. 그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천천히 익어가고 있을 무언가를.

발효는 그냥 음식이 아니라 시간 자체였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알려준 사이케이 된장 공장은 빠른 속도와 반대로 살아가는 법을 조용히 깨닫게 해준 장소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늘 체할 것 처럼 급하게 움직이고 빨리 빨리 결과물을 확인하려 했던 필자에게 된장은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사이케이 된장 공장은 선생님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계시는 소박한 교실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