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27편> 작은 책방 마니아를 위한 교토 소도서관 & 북카페로의 힐링 여행
작은 책방 마니아를 위한 교토 소도서관 & 북카페로의 힐링 여행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27편은 책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오래되어 쿰쿰한 책 냄새와 상반되는 향긋한 찻내음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대도시 교토의 또 다른 매력 속으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토의 소도서관 & 북카페를 찾아서
교토는 필자뿐만 아니라 일본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몇 번이고 다시 찾는 도시다. 기요미즈데라, 아라시야마, 기온까지 전통과 현대의 시간이 공존하는 풍경이 언제나 매력적이 이도시를 이번에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시 찾았다.
필자는 책을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점과 도서관 같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좋아한다. 그런데 일본 여행지 중에서 의외로 교토에 조용한 책방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지의 화려한 면모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일상처럼 찾는 곳으로 사람들이 너나없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이번 여행의 테마를 소도서관 & 북카페로 결정했다.
작은 도서관이나 북카페에 대한 정보는 원래 많지 않지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로컬 사이트에서 소리소문없이 공유되고 있는 몇 곳을 알아냈다. 책 좋아하는 현지인이 애정하는 공간이 오늘의 힐링 여행의 목적지다.
교토의 숨은 명소 우즈마사 북살롱(北サロンうずまさ)
첫 번째로 찾아간 북카페는 지하철 도자이선의 종점에서 한 정거장 전인 우즈마사텐진가와(太秦天神川)역 인근에 있는
우즈마사 북살롱이라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간판은 없는데 열려있는 나무문이 하나 있다. 그곳이 바로 우즈마사 북살롱의 입구다. 북카페 내부는 전통 가정집을 개조한 구조로 대체로 인문학과 독립 출판물, 사진집들이 갖춰져 있다.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커피나 차를 주문하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제한 시간 없이 머물 수 있다. 이곳의 분위기는 말그대로 자유로웠다. 조용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와 창밖의 햇살마저 고요하게 느껴지고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사그락대는 종이 소리가 필자가 꿈꾸던 책방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필자는 처음으로 교토를 여행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너무나 따사롭고 평화로웠다.
책과 일상을 함께하는 히가시야마 구립 미니 도서관
우즈마사 북카페를 나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교토 전통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히가시야마 구(東山区)이다. 히가시야마는 여행객이 찾는 기요미즈데라와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골목이다. 오래된 가정집이 즐비한 이곳에서 현지인이 가장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뽑은 곳은 바로 히가시야마 구립 미니 도서관(東山区ミニ図書館)이다.
이곳은 나라에서 설립한 도서관이 아니라 마을 회관 옆에 붙어 있는 소규모의 지역 커뮤니티형 열람 공간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집과 에세이, 아이들이 그린 그림책 원화까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할머니 몇 분이 책을 읽고 계셨고 그 가운데 어느 학생이 참고서를 보며 앉아 있는 풍경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마을에서는 책을 읽는 행위가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 다른 시간 기온 북앤티(Gion Book & Tea)
필자가 세 번째로 방문한 장소는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교토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기온(祇園)에 위치한 북앤티(Book & Tea)라는 북카페다. 번화한 관광지 한복판이지만 그곳에서 한 골목만 벗어나면 신기하게도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이 펼쳐진다.
기온 북앤티는 낮 동안에는 책을 중심으로 하는 카페로 운영되고 밤이 되면 음료 대신 와인과 위스키를 곁들인 독서 공간으로 변신한다. 서가에는 일본의 현대소설, 영문 철학 서적, 전 세계 문학 서적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문판 소설을 선택한 후 미리 주문한 다즐링 홍차 한잔과 함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잔잔한 음악은 낮게 깔려 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이 책을 보며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마치 백색소음처럼 공간을 채웠다.
조용한 낮이 지나고 더 조용한 밤이 되자 카페의 조명은 한층 낮아졌고 독서등이 켜지며 그 아래에 앉은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만의 세계에 잠겨 책을 읽고 있었다. 필자 역시 이곳에서 보낸 몇 시간이 지금까지 교토에서 보낸 가장 느리고 진한 밤이었다.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
세 곳의 북카페를 돌아다니는 동안 필자가 책만 살펴 본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장소인 우즈마사 북살롱에서는 잠시 카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고 두 번째인 히가시야마 도서관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도 읽어보았다. 마지막 기온 북앤티에서는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과 서로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책이라는 것은 단순히 읽기만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읽고 있는 사람들 간의 교감의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교토라는 도시의 풍경과 어우러져 더 깊고 풍요롭게 다가왔다.
멈춤의 공간과 쉼의 시간으로 여행을 채우다
교토의 작은 도서관과 북카페를 돌며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문장이 있다면 기온 북앤티의 책갈피에서 발견한 문구다.
'책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지만 틀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신칸센 안에서 필자는 다시금 그 문장을 조용히 읽어보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필자가 바랐던 건
인생의 정답이 아니라 그저 잠시 멈추어 갈수 있는 공간과 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교토에서 책을 만난 공간과 책을 읽었던 시간들이 그것을 충실히 채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