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21편> 시모키타자와, 도쿄 도심 속의 한적한 골목길 문화 속으로!
시모키타자와, 도쿄 도심 속의 한적한 골목길 문화 속으로!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21편으로 오늘은 도심 속 안쪽을 파헤치러 갑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질서인듯 무질서로 가득한 도시 안에서도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골목길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도쿄 도심의 골목 안에 숨어있는 작은 문화 공간_ 시모키타
크고 번화한 도시 도쿄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신주쿠, 시부야, 긴자, 롯폰기 등 각자의 화려함을 뽐내는 일본 최고의 도시 도쿄의 중심부는 늘 정신없는 속도감으로 압도당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속도감있게만 살 수는 없다. 가끔은 멈춰야 할 때가 있고 실제로도 멈추고 싶은 때가 종종 찾아온다. 사치라고 생각될지는 몰라도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걷는 여유로움을 누리고 싶다. 필자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찾는 곳 '시모키타자와(下北沢)'가 있다. 도쿄 도심 속의 작은 마을, 힙스터와 빈티지의 성지,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 같은 곳이라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시모키타자와는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다.
시모키타자와, 일명 시모키타를 처음 알게 된 건 5년 전쯤 우연히 들어간 중고 레코드 숍에서였다. 그날 들려온 재즈 음악에 이끌려 그날 이후로도 필자는 도쿄에 올 때마다 하루 정도는 이 골목 안을 헤집고 다닌다.
그렇게 다니기만 하던 곳을 이번에는 글자로 소개해보고싶어졌다. 시모키타의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작은 문화 공간들을 소개할 때가 된 것 같다.
낮과 밤이 가득찬 공간_ ‘book café and bar B&B’
시모키타역 남쪽 출구로 나와 3분정도 걷다보면 ‘BONUS TRACK’이라는 복합 문화 공간이 나온다. 그 안쪽에 있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이름은 'book café and bar B&B' 이다. 이곳은 필자가 시모키타를 매번 다시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카페이자 bar로 이용할 수 있고 동시에 서점이자 출판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낮에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고 밤이 되면 술과 이야기가 오고가는 공간이다. 참으로 기가막히게 전환되는 그 모습이 볼때마다 신기하다. 벽면에는 독립 출판물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책상에는 저마다의 기록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필자가 앉아있던 창가 자리에는 젊은 일본 여성이 소설책을 읽고 있었고 창밖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조용 한 가운데 음악이 명료하게 들리는 이 카페의 감성은 필자의 묵은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게 만드는 기술이 가득한 이곳의 이름 B&B는 Books & Beer의 줄임말이다. 낮 동안 책을 읽고 밤이 되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이보다 더 이상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가만히 머물수 있는 공간_ ‘Shimokitazawa Cage’
시모키타의 골목은 미로처럼 돌고 돌아 방향감각을 어지럽힌다. 그 길 끝의 어딘가였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기찻길 옆에으로 철조망에 둘러싸인 듯 보이는 건물이 있다. 공사 중인 곳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도쿄의 문화 공간 중 하나인 ‘Shimokitazawa Cage’였다.
이곳은 평소에는 비어 있지만 매주 금,토,일요일마다 푸드트럭이 들어선다. 음악가들이 자체 공연을 하며 소규모 전시회, 각자의 작품을 파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필자가 방문한 건 토요일 오후였는데 한쪽에선 향수 공예 클래스가 열리고 있었고 다른 쪽에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연주장 앞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머물 수 있는 공간, 바로 그게 시모키타 골목의 진짜 매력이다.
오래된 것의 미학_ ‘HAIGHT & ASHBURY’
시모키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패션이 바로 빈티지다. 이곳은 전국의 빈티지숍 애호가들이 성지라 부를만 하다. 단순히 옷이 많아서가 아니라 옷을 선별하고 큐레이션 하는 기준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HAIGHT & ASHBURY’라는 이름의 가게는 매우 인상깊었는데 1960년대 유럽, 1970년대 일본, 1980년대 미국의 옷들이 한 공간에 시간 여행하듯 전시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점의 직원들은 단순히 옷만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해주고 그 시대의 문화까지 함께 이야기해준다. 말그대로 옷의 역사박물관 같았다.
필자는 이곳에서 일본의 70년대 교사들이 입었던 울 코트를 구매했다. 옷은 두껍고 투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나니 단숨에 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시모키타에서는 패션이 곳 역사이자 미학이다.
깊은 밤 극장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_ ‘Tollywood Short Film Theater’
그날은 시모키타에서 저녁을 먹고 걷다가 우연히 작은 건물의 지하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나온 곳은 ‘Tollywood Short Film Theater’로 오로지 단편 영화만 상영하는 일본 유일의 단편영화 전문관이었다. 티켓 가격은 1000엔으로 필자는 무작정 입장을 했다.
그날 상영된 영화는 신진 감독들의 15~30분짜리 단편 작품 3편으로 내용은 짧았지만 감정선은 깊고 넓었다. 영화가 끝나고 작은 토크 세션이 이어졌는데 이때 감독이 직접 등장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시모키타에선 전시도, 영화도, 상점도 지금 여기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천천히 음미하며 걸을 수 있는 마을
더이상 여행을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 시모키타를 걸을 때면 어디를 가야 하지 라는 질문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저 마냥 걷다 보면 무엇이든 만나게 된다. 어떤 날은 골목에서 아마추어 연극단의 공연을 보게 되고 어떤 날은 카페에서 누군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 곳의 시간은 정석대로 흐르는게 아니라 바람처럼 이리저리 사람들 사이로 흘러간다. 여행지가 아닌 마을, 브랜드가 아닌 분위기,
계획이 아닌 우연으로 가득찬 공간. 도쿄의 한복판에서 그렇게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유일한 동네 시모키타자와의 하루가 또다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