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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30편> 일본 지방 기후현 촌락에서 한달살기 체험 리뷰일본 현지인 여행지 2025. 7. 19. 21:47
일본 지방 기후현 촌락에서 한달살기 체험 리뷰
일본 현지인의 숨겨진 여행지 30편으로 대망의 농촌살이 후기를 준비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의 속도와 정반대로 흐르는 지방 촌락 마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한달간 살아본 생생한 체험기를 시작합니다.
도쿄의 편리함을 벗어나 시골마을에서 살아보기를 선택하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쿄에서의 삶은 편리하다. 지하철은 정시에 움직이고 필요한 건 대부분 모바일로 클릭하면 해결이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편리함이 사람을 점점 더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편리함 속에 하루 하루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업무 위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필자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SNS에서 보게 된 일본 지방 한달살이 프로그램(地域おこし協力隊お試し滞在)은 한여름 단비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방의 작은 산촌 기후현, 인구가 700명도 되지 않는 이 마을에서 일본 현지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며 농촌의 일손을 돕고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이색 프로그램이었다. 긴 시간을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필자는 지원서를 쓰고 간단한 온라인 면접을 거쳐 이 프로그램의 최종 선정 통보를 받았다. 이제 도시의 속도와 정반대의 리듬을 가진 시골 마을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낯선 마을 이부카촌에서 한 달 살이를 시작하다
필자의 한 달 살이 거주지는 기후현 모토스시(本巣市)의 외곽에 있는 이부카촌(伊深村)이라는 마을이었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자동차로 40분이 걸리고 편의점은 마을 밖 10km에 있으며 전철은 하루 두 번밖에 오지 않는 말그대로 시골 중에 시골이다.
한 달 살이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주민 몇 분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어르신들이었는데 모두 필자를 도쿄에서 온 젊은이라 부르며 반가워해 주셨다. 필자는 마을회관 옆의 공가(空家)를 리모델링한 체험자 숙소에 짐을 풀었다. 가스는 밸브를 사용하고 태양광 패널로 온수를 데우며 세탁물은 마당의 빨랫줄에 널어 햇빛에 말려야 했다.
편하지는 않았다. 아니 낯설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선 감정을 익숙함으로 천천히 바꾸는 과정을 이제는 즐길 때가 되었다.
마을방송으로 시작하는 이부카촌의 하루
이부카촌의 아침은 하루를 깨우는 마을 방송으로 시작된다. 아침 6시 정각이 되면 고요한 공기를 깨고 마을 이장님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여러분~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00월 00일 00시입니다. 날씨는 맑고 기온은 00도입니다.”필자는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걷고 마당으로 나가 한껏 기지개를 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벽 하늘에 별빛이 아직 남아있다. 집집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논길의 풍경을 바라보며 필자는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삶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필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마을 어르신이 운영하는 배추밭에 가서 비닐을 걷고 잡초를 뽑는 것이었다. 그리고 낮에는 공동 창고를 정리하거나 지역의 소모임 행사 준비를 도왔다. 일당은 없었지만 그 대신 매일 지역주민 분들이 직접 만든 도시락과 갓 수확한 채소, 과일을 먹을 수 있었고 혼밥이 아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마을 사람들과 지내는 일상의 시간
이 마을에는 집집마다 초인종이 있지만 사람들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그 대신 현관문을 열면서 '고이마스(갑니다~)'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 방식이 이상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필자도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고이마스(갑니다~)'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다다미방에 앉아 차를 마시게 되었다.
오늘은 마을에서 진행하는 작은 축제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함께 김밥을 말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필자가 이렇게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평생을 사는게 지루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씩 바뀌어요. 그걸 보는 게 재밌어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온도를 지키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다.
손님이 아닌 마을 사람이 되어버린 어느 날
마을에서의 일상에 젖어 3주차쯤 되었을 무렵부터 작은 변화가 생겼다. 필자가 손님이 아닌 마을 사람 중 한 명으로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밭에서 일을 하다보면 지나가는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고생이 많네요' 라며 인사를 건넬 때나 비 오는 날 우산없이 걸어가고 있으면 손수 만든 비닐보자를 씌워줄 때 문득 필자는 이곳의 일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를 느낄수 있었다.
후에 지역 방송에서 농촌 한달살이 체험자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제가 이곳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이 마을이 저를 선택해 준 느낌입니다.”
한 달이 지나고 떠나던 날의 풍경
마을에서 한달살이를 하는 마지막 날에 작은 송별회가 열렸다. 현지 학생들이 그려준 손편지에 마을 어르신들이 만든 수제 반찬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오라는 말도 함께. 짐을 꾸려 나오자 마을회관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어르신들의 눈빛에서 필자는 따스한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다시 도쿄행 전철에 몸을 실었고 창밖으로 스쳐가는 이부카촌의 풍경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언젠가 다시 훌쩍 떠나 이곳으로 와야겠다 다짐하며.
이부카촌이 만든 변화와 내 삶의 속도
지금도 아침이면 귀에 쟁쟁한 마을 방송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필자는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한다.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이부카촌의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가끔 건너편 이웃집 사람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쓸쓸하게 느껴지고 편의점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부카촌 한달살이 덕분에 필자는 어디에서든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할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한 달은 단순한 농촌체험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고 나와의 관계를 다시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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